발표 작품/나래시조

2014년 나래시조 발표작 - 봄, 여름, 가을, 겨울.

선들메 2014. 4. 30. 20:47

2014년 나래시조 발표작

 

* 봄호(109호)

 

독거 노인 웃다

 

박홍재

 

앞치마 질끈 묶고

밥을 푸는 할아버지

내가 겪은 아픔들은 가슴 속 감추고서

훈훈한

말 한마디씩

숟갈 위에 얹습니다

 

골방에셔 홀로 먹던

밥상을 물려 놓고

뜨근한 국물 위로 김이 솟는 한 끼 밥상

움푹 팬

잔주름 사이

웃음 끼가 돋습니다

 

 

* 여름호(110호)

 

나이테

 

박홍재

   

옹이 진 가슴에는 대문 하나 걸어 놓고

단단하게 못질해 놓은 둥지에 웅크린 채

기지개 켜지 못하고 송곳 끝을 갈았다

 

때로는 답답함에 빗장도 떼어 내고

물소리 바람 소리 산새 소리 들어 보려

고삐가 풀어진 채로 온 들판을 내달렸다

 

봄여름 가을 겨울 다져놓은 무늿 결에

멈추면 불땀 머리 숨 한 번 돌리면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목판화를 새겼다

 

* 가을호(111호)

 

엉겅퀴

 

 

가슴에 품어안은

정이란 끈적거림

 

환하게 웃음으로

맞이하는 가시 속에

 

새소리

향기로 담아

고갯짓이 붉었다

 

* 겨울호(112호)

 

재개발 지구

 

 

반쯤 헐린 집채 곁에

멀뚱히 선 전봇대

얼기설기 얽힌 인연 아직 끊지 못하고

동강 난 전깃줄들만

바람결에 흔들린다

 

 

무너진 담벼락도

흩어지면 외롭다고

서로를 보듬으며 온기를 찾아봐도

굴착기 등 굽은 소리

어깨 너머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