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무엇인가?
남자는 울고 싶을 때 길을 떠난다.
뭔가 소리치고 싶을 때 행장을 꾸린다.
혼자 있고 싶을 때 터벅터벅 길을 걷는다.
황야의 늑대가 동굴 속에서 홀로 제상처를 핥듯
자신의 먹먹한 가슴을 길 위에서 풀어 버린다.
여자는 허전하고 쓸쓸할 때 여행을 나선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을 때 배낭을 챙긴다.
밑도 끝도 없는 인생살이에 지쳐 허덕일 때 비로소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동아일보 김화성 기자 <길 위에 놀다>에서 발췌.
일시 : 2009년 10월 18일 토요일.
테마길 : 영선길을 따라서.
새벽녘에 몰아친 폭풍우는 세상을 싸늘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여파도 있어서인지 길걷기에 모인 사람은 예와 같이 많지를 않았다.
예정에는 30명 단위로 조를 편성하여 길을 안내하기로 한 계획이 변경이 되었다.
그렇지않아도 걱정을 하던 우리 옛길팀은 쾌재를 부를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60명 정도로 파악이 되어 김한근 소장이 맡기로 하고 우리는 도우미로 나섰다.
150명을 예상하고 지도 및 자료를 150부를 만들어 왔는데 말이다.
김한근 소장의 설문이 있던 곳 부터 시작이 된다.
우리는 앞에 보이는 것에 허덕이다 보면, 곁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저 여인이 끌고 가는 가방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행장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누구를 찾으러. 만나러,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저 버스 속의 사람들은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홍성방(鴻盛坊) 간판이 있는 곳이 설문(設門)이 있던 곳이다.
설문은 왜관이 생기면서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다.
왜구들이 출몰로 항상 부산에는 나라에서도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해서 왜관을 차리고 왜인들을 집단 수용하면서 실물 거래가 이루어졌다.
허나 이들은 자신들의 구역에서 벗어나 많은 해코지를 하였다.
특히 조선 여인에게 주는 피해가 컸다.
그 때 왜인들이 지켜야 할 조항이 새긴 비석이 부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옥란원(玉蘭苑)이란 편액이 있다.
바깥쪽에는 상해가(上海街)란 편액이 있다.
김한근 소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오늘 도보를 할 시민들.
이곳이 매립이 되기 전의 해안가이기도 하다.
기상대
기상대에서 바라본 영도.
기상대 건물. 배모양을 한 형상이라고 한다.
옆 뜰의 배롱나무에 기상청 역사를 적어 두었다.
청엽하나님은 영주동에서 자라면서
봉래초등학교는 형제, 자매, 손주딸도 모두 동창이란다.
그리고 남성여고 시절의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 시절의 그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앞은 복병산, 그리고 매리놀 병원 뒷산.
메리놀병원 건물과 그 주위.
기상대 옥상에서 바라본 부산항이 오늘도 철골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태양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상대 장치라고 한다.
부산의 상징 용두산 타워 전체 높이는 120 m 이다.
기상청 벽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덕지덕지 덧칠을 하여도 속내는 다 덮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청엽님은 후배들과의 짧은 만남을 가지고...
正恪寺 담벼락의 담쟁이 넝쿨이 옛 정취를 한층 더 고즈녁하게 한다.
일본인들이 쌓은 담벼락은 비스듬히,
우리나라 담벼락은 직각이다.
성터를 쌓는 방식도 이와다르지 않다.
화가의 기념관을 기리는 동판이 벽에 걸려 있다.
40계단 특별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경상도 아가씨로 시작하여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노래는 이어지고 흥도 돋우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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