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도보./걸으며 생각하며

부산의 골목길

선들메 2013. 4. 7. 15:18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근대문화의 香

제9차 그린워킹 - 영선고갯길을 찾아서

 

개항기~일제강점기~한국전쟁, 상흔 간직한 문화재만 44곳

 

장춘여관·조선키네마 등 이야깃거리 풍성한 장소도 즐비

 

40계단 앞 구성진 문화공연에 주민들도 가세 흥겨운 마무리

국제신문

글·사진=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2009-10-18 21:09:36

/ 본지 9면

   

                                 

 

제9차 그린워킹 걷기대회가 열린 지난 17일 부산 중구 동광동 40계단에서 원로가수 백낙천(오른쪽) 씨가 임대윤(가운데)씨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경상도 아가씨'를 부르고 있다.

부산 중구 영주동 인쇄골목2길. 허름한 'ㅁ'자형 가옥에서 한 노인이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한다. "여기가 유명한 장춘(長春)여관이에요. 왜정 때 건립돼 자유당 시절 고관대작들이 부산에 오면 머물던 곳입니다." 향토사료전문가 김한근(51) 씨의 설명에 세월의 더께가 풀풀 날린다. 5년 전 사업에 실패하고 이곳으로 이사했다는 집주인은 "1970년대 초까지 영업을 했다고 하데. 지금은 언제 무너질지도 모를 만큼 낡았지만 예전엔 얼마나 유명했다꼬."

지난 17일 부산 동구 상해거리에서 용두산공원까지 펼쳐진 '제9차 그린워킹 걷기-영선고개를 찾아서'는 근대문화의 향기를 되짚어보는 시간 여행이었다. 100여 명의 뚜벅이들은 국제신문과 (사)걷고싶은부산·부산길걷기시민모임이 개척한 원도심 옛길 걷기(4.5㎞) 코스에서 부산항 600년의 자취를 고스란히 체험했다. 초량왜관~일제강점기~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44곳의 문화재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역사관광 자원이었다.

출발 지점은 상해거리. 초량왜관의 설문(設門·조선인 거주지와의 경계)이 설치된 '홍성방'에서 질문이 나왔다.

 

"경북 구미의 '왜관'이라는 지명은 어떻게 생겼어요?"

"부산항으로 입국한 일본 사신들이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묵어가던 곳이 왜관입니다."

부산터널 앞 육교를 건너면 부산 최초의 근대 학교인 봉래초등학교가 기다린다. 사학자들은 일본 사신이 조선 국왕의 전패(殿牌·임금을 상징하던 나무패)에 인사를 올리던 초량객사가 봉래초등학교나 삼육초등학교(부산터널 입구 오른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봉래초등학교에서 심당요양병원을 지나면 본격적인 영선고갯길이다.

부산 최초의 영화제작사인 조선키네마(남성여고 옆)를 지나 복병산 체육공원에서 1차 휴식. 용두산공원과 남항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40계단에선 (사)문화도시네트워크가 마련한 문화공연이 펼쳐졌다. 원로가수 백낙천(70) 씨가 임대윤(60) 씨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경상도 아가씨'를 구성지게 뽑는다. 흥에 겨운 뚜벅이들이 1만 원짜리 지폐를 아코디언에 끼운다. 동네 주민들도 끼어들어 어깨춤을 춘다. "부산시나 중구청에서 주말마다 문화공연을 연다면 명물이 될 것 같아요." 인터넷 걷기동호회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 박홍재(57) 씨의 제안에 주변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