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작품/나래시조

2013년 나래시조 발표작 - 봄, 여름, 가을, 겨울.

선들메 2013. 4. 30. 14:56

 

* 봄호(105호)

 

새벽시장

 

박홍재

 

화톳불 춤사위에 어두움은 물러서고

겹쳐 입은 옷 살만큼 뒤뚱이는 걸음걸이

바싹 탄 입술 언저리 싸한 바람 스친다

수런대는 소리에 눈을 뜨는 간 고등어

밤새워 골목 지킨 가로등 하품 소리

손수레 둥근 바퀴가 시장 바닥 들어선다

 

발자국 무늬마다 길바닥에 그려지고

디딘 자국 또 디뎌도 모양 다른 하루 모습

시장 안 새벽 공기가 기지개를 활짝 편다

 

꿰어 찬 앞주머니 두둑하게 배불리면

구겨진 지폐들이 허리 펴는 어깨 위로

누런 이 드러내 보이는 해장술에 해가 뜬다

    

 

* 여름호(106호)

 

민박집

      

박홍재

       

살을 에는 찬바람에 개 짖는 소리 얼어붙고

문짝 없는 대문처럼 주인 마음 열려 있어

해질녘 깊은 산동네 자리 한 켠 내어준다

 

십 여 년 전 교통사고 의족 하나 의지한 채

고령 노모 봉양하며 디디고 선 불안함도

편안한 웃음에 묻혀 거뜬하게 보였다

 

벽지로 붙은 신문지에 십 여 년 전 멈춰 있고

머릿방 사방 벽면 올 한 해가 버티고 있어

옹색한 그 많은 날들 무색하게 하는 주인

 

칠선계곡 건너 뵈는 마천면 금계마을

엄천강 앞에 흘러 지리산을 감으면서

산삼 물 받아다 먹는 여유로운 마음씨

 

 

* 가을호(107호)

 

치매 1

 

박홍재

  

승방에 틀고 앉아

한 소식 하겠다고

 

날마다

밥 축내며

해롱대는 중생이여!

 

모든 끈

내려놓으니

거침없이

뱉는다

 

* 겨울호(108호)

 

여행

 

박홍재

 

 

봄바람 훈기 끝에

촉을 하나 틔웁니다

햇살이 구슬리고 구름도 단련시켜

뻗을 곳 방향을 잡아 설계도를 그립니다

 

단추를 채우면서 하나하나 매어 달아

가야 할 곳곳마다 점점이 표시하면

새로운 길이 보이며

굵은 가지 생깁니다

 

올곧은 나무처럼 살다가 지겨우면

또 다른 가지 뻗어

새 길도 만들면서

창공을 나의 가슴에 끌어안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