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작품/부산시조

2013년 통권 제33호, 34호 「노부부」

선들메 2013. 10. 23. 23:13

 

노부부

 

 

박홍재

 

 

 

달그락 그릇 소리

솥뚜껑 여는 소리

나물 무친 찬그릇에 김이 서린 밥 두 공기

할머니 솟아오른 해 봉긋하게 담았다

 

골짜기 하도 깊어 겨울마저 꿈쩍 않고

부엌 앞 개숫물이 꽁꽁 언 얼음장을

등 굽은 할아버지가

무딘 괭이로 깨고 있다

 

 

야간 파출소에서

 

박홍재

 

육법전서 귀퉁이가

갈지자로 비틀대고

삿대질 욕지걸이 팽팽하게 맞선다

중년의 팍팍한 어깨 풀어 놓는 난장이다

 

말씨름 주고받는 초점 잃은 시선 하나

어쩌다 불쑥불쑥 속엣 것 뱉어 내지만

분노는 물거품 잦듯 모래 속으로 스며들 듯

 

꼬부라진 혀 꼬리도 곧아지는 시간 즈음

뒤통수 머쓱하게 몸짓까지 쭈뼛대는

가슴 속 응어리 풀어

고갱이를 세운다

 

 

부산시조(34호) 시조 원고(2013.11.6)

 

구름 한 줌

 

박홍재

 

 

카트만두 이륙하여 포카라행 비행기 안

히말라야 산맥 기류 온몸으로 받으면서

앞가린 구름 속에서 소리 질러 길을 찾다

 

쌍발 여객기 소음 굉음 고막이 어지럽다

예티 항공 스튜어디스 구름 한 줌 목화송이

양쪽 귀 꼭꼭 막아서 불안감을 감싸 준다

 

좁은 창 저 너머로 뭉게구름 뜨는 하늘

설산에 되비치는 햇살 더욱 반짝인다

귀 속에 목화송이가 저기저기 피고 있다

 

 

이 층 달세 방

 

박홍재

 

 

전봇대 허리춤에

이층 달세 쪽지 하나

바람에 못 버티고 땅바닥 나뒹군다

이층집 무너졌는데

아래층은 괜찮을까

 

길바닥 깔고 누워 밟혀서 쭈글쭈글

한 칸짜리 달세 집이

짓이겨져 편편하다

주인은 나동그라진

집 세우고 있는지

 

가누지 못한 집도 덩그렇게 달이 뜨면

문풍지 틈 비집고 희미하게 빛이 들어

내일로 이어지는 길

비춰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