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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과 의병문학』(왜 義兵文學인가) 에 대한 토론문 2

선들메 2016. 9. 24. 11:50

『의병과 의병문학』(왜 義兵文學인가) 에 대한 토론문 2

강동욱(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淺學卑才인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앉은 것만으로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尹在根 교수님의 名聲을 익히 들어왔고, 또 교수님의 著述을 통해 동양 고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교수님의 발표문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우선 교수님의 발표문 『왜 義兵文學인가』 는 論文이라기보다 기조발제문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이는 교수님의 발표문이 論点을 제시하기보다 이 시대 우리 문학 전반에 걸쳐 義兵精神이 필요한 이유를 들어 後學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자 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발표문을 통해 밝히신 교수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나라 잃은 시대 문학을 공부하면서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草芥와 같이 버린 의로운 사람들의 글을 배우기보다 ‘문학’이란 용어에만 집착해 附倭人들의 글을 많이 배워 왔던 사람으로서 교수님의 “우리 현대문학의 發生은 떳떳하다기보다 부끄러운 쪽이다. 제나라가 없어진 마당에서는 救國의 횃불 노릇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현대문학의 발생은 救國의 횃불 노릇보다 그 당시 일본 현대문학을 본떴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주장은 참으로 마땅하다고 여겨지고 또 공감을 합니다. 또한 “우리 현대문학 정신도 오로지 서양문학 정신의 판박이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동안 歐美의 文學論을 빌려다 鸚鵡之人 즉 인간 앵무새 노릇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연연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 문인들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문학정신이 과연 우리의 것인지 自問해 본 적이 있느냐고 反問하고 싶다.”는 一聲 역시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이같이 교수님의 발제문의 전체적인 論旨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오늘 토론자로서 所任을 다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은 ‘義兵文學이란 述語는 義兵精神을 본받는 문학’이라고 하셨는데, 현대문학정신이 의병정신을 警策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은 공감을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의병문학’에 대한 개념을 너무 넓게 생각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의병문학’ 이란 용어는 의병과 의병활동을 소재나 주제로 다룬 문학 작품으로 규정하고 의병 문학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병가사, 의병 한시, 의병 민요, 의병수필, 의병설화 등을 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高見을 듣고 싶습니다.

 

  ‘義兵’이란 용어는 임란 때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義旅 義軍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즉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방을 소홀히 했던 관군은 왜적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20여 일만에 한성이 왜군에게 함락당하고 임금이 蒙塵을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무능한 관군의 역할을 대신 맡고 나선 것이 의병입니다. 그 시발지가 바로 이곳 의령입니다. 하지만 현재 ‘의병문학’ 연구는 거의 일제 강점기 의병 활동에 국한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이는 의병관련 자료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망우당의 작품은 우리나라 의병 문학 작품 중 가장 앞 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망우당 문학에 대한 연구는 소략하지만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란 당시 의병을 모으기 위해 지은 倡義文 등은 의병문학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연구가 전무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의병문학으로서 倡義文의 자리매김에 대한 교수님의 평소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발제문을 보면, 義兵精神 = 君子道 = 본래 우리 문학정신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는 모름지기 문학은 대중과 즐겨야 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문학이 대중과 함께 즐기려면 쉬워야 된다고 봅니다. 교수님께서 밝혔듯이 현재 --주의 --(시)니즘 등 서양 문학을 추종하는 우리 문학 현실 때문에 대중과 즐기는 문학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주장하는 ‘우리 문학 정신=君子道’ 라는 것도 결코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君子’라는 용어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지배층인 士大夫들이 즐겨 사용했던 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문학 정신을 은근과 끈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君子道’라는 용어가 쉬운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문학 정신=君子道’라고 하는 해석이 서양문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義兵을 ‘正命을 따랐던 君子의 門徒’라고 규정한 것도 內包된 의미는 이해가 되나 너무 어려운 규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임란 의병은 섬 오랑캐인 왜적을 물리쳐 국란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나라를 돕는다’는 소위 ‘勤王精神’을 발휘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라와 고장을 지키고자 분연히 떨쳐 일어선 의로운 정신을 지닌 民草(民衆)정도로 규정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당시 지배층에서 즐겨 썼던 君子나門徒라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덧붙여 南冥 曺植 선생께서 건넨 諫言이 바로 正命思想을 담고 있다면, 여기서 正命과 正義는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틀린 해석이 되는지요. 의병의 개념을 “義를 지키는(守) 正命精神으로 뭉친 君子道의 勇士”라고 하는 것과 그냥 ‘의로운 용사’라고 하는 것과의 차이점을 여쭙고 싶습니다. 이는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저는 윤교수님의 발제 논지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만, 우리 문학을 누구보다 아끼고 이를 穿鑿하시는 교수님의 見解는 後學들이 널리 익혀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토론자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愚問을 드린 것입니다. 나무라지 마시고 많은 가르침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